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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pinion ]

그럼에도 우리는 싸우고 있다

[전북교육신문칼럼 ‘시선’] 박슬기
(산부인과 전문의, 페미의학수다 ‘언니들의 병원놀이’ 기획자)

( 전북교육신문  편집부 기자   2018년 12월 10일 09시08분   )


(사진=박슬기)

마을버스 크기의 소형 버스에 온통 남성들이 빼곡히 타고 있었다. 버스는 광장을 빙빙 돌더니 점차 여러 대로 늘어났다. 광장 중앙에는 여성 한 명이 서 있었다. 버스에서 남성들이 손을 내밀어 여성의 머리채를 잡아채 끌다가 내동댕이쳤다. 여성은 소리치며 저항했고, 남성들은 조롱과 야유의 함성을 보내며 크게 웃었다. 버스들이 광장을 돌며 여성을 막아섰고 무수한 손이 버스에서 뻗쳐 나와 같은 짓이 반복됐다. 전쟁 같은 악몽이었다. 꿈에서 깨고도 한참 숨이 잘 쉬어지질 않았다. ‘이수역 폭행사건’을 접한 날 밤의 꿈이었다.

그것은 단지 논쟁거리를 넘어선 실체가 있는 공포였다. 폭력은 폭력일 뿐이다. 폭력의 원인이란 오직 폭력 그 자체다. 그럼에도 ‘남성을 가해자로 만든 여성’이라는, 소위 ‘맞을 짓을 했다’는 주장이 삽시간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분노 이전부터 오래 체화된 공포였다. ‘맞을 짓’이란 없다. 하지만 여성의 모든 것은 ‘맞아도 싼’ 이유가 된다. 밥을 안해줘서, 웃어주지 않아서, 다른 남자에게 웃어줘서, 구애를 안받아줘서, 헤어지자고 해서, 남자보다 돈을 많이 벌어서, 남자를 무시해서, 다른 여자가 미워서. 숱한 여성들이 끔찍한 폭력의 희생양이 되어왔다. 그리고 이제는 ‘페미니스트라서’가 그 ‘맞아도 당연한’ 이유에 당당히 추가된 것이다.

한 평론가는 “남녀 간의 페미니즘으로 인한 갈등”이라고 말했다. 성차별로 인한 페미니즘이 아니라, 마치 페미니즘 자체가 갈등의 원인이라는 인식.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그래서 필연적으로 두렵고 고통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문제를 말하는 순간 오직 내 자신이 문제가 되고 마는 것을 견뎌내야 하므로. 내가 살아온 삶을 각성하는 과정 역시 뼈아프지만, 내가 속해있는 기존질서에 의한 사회에서, 고립되고 배제되고 깎여 나가는 고통스러운 경험. 스스로 불편한 존재가 되어야 함을 감수해야 하는 용기. 그에 이어서 언제든 물리적인 폭력을 당할 수도 있다는 실질적인 공포까지.

수만 명의 여성들이 모였던 ‘성차별 반대 집회’ 참가자의 목격담이다. 한 노년 남성이 택시를 타고 지나던 중 여성들의 집회를 보고, 다짜고짜 택시에서 내려 큰 소리로 욕을 퍼부었다고 한다. 수만 명의 여성들도 두렵지 않은 한 명의 노년 남성. 반대의 상황이라면, 가능했을까. 만약 수만 명의 남성들이 페미니즘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면, 그 앞에서 여성들은 과연 택시에서 내려 페미니즘을 외칠 수 있을까. 여성들의 집회가 끝난 후면 인근 화장실마다에는 집회 때 입었던 옷을 갈아입기 위한 여성들로 북적인다고 한다. 설명하지 않아도 체감되는 공포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우리는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두렵고, 불편하고, 고통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같은 공포를 안고서도, 싸울 것을 선택해 왔다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마치 파도처럼 힘을 더해 높아지는 페미니즘의 물결 속에서, 나는 역사의 숨결을 느낀다. 18~19세기 여성들이 참정권을 요구하며 투쟁했던 ‘제 1의 물결’, 68혁명 이후 여성해방을 외쳤던 ‘제 2의 물결’을 비롯해, 앞서간 여성들의 헌신적 투쟁으로 다져진 역사적 발판 위에 지금 나의 삶이 있음을 생각한다. 앞선 여성들의 투쟁으로 지금 내 삶이 지켜졌다는 인식. 나 역시 다음 세대 여성들의 삶을 지켜내야 한다는 책무. 그 역사적 흐름 한가운데에 우리가 파도로 물결치고 있음을 느낀다. 지금의 우리도 어쩌면 언젠가 ‘제 3의 물결’로 불리지는 않을까. 지금 내가 살아내는 삶이 다음 여성들의 삶을 결정할지도 모른다.

지난 1년을 새삼 돌아본다. ‘#MeToo’로 시작된 올 한해, 그 어느 때보다 페미니즘이 화두였고, 그에 대한 반발 역시 거셌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나는 느꼈다. 나는 고립된 점이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점인 채 버텨온 시간을 넘어 서로를 알아볼 때의 벅참. 굳게 손잡은 우리. 함께 할수록, 그 선을 둘러싸 면으로 채워나갈 힘이 모인다. 우리는 이렇게 이 세상을 채워나갈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제 우리는, 세상은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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