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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향: 억눌린 이들에 보낸 따뜻한 시선

[수현이의 문학생각 - 한국현대문학 읽기(5-나도향)]

( 전북교육신문  편집부 기자   2019년 07월 03일 07시31분   )


(글=문수현, 그림=강현화)

나도향(1902~1926)은 서울 청파동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경손이고 필명은 빈(彬)이다. 도향(稻香)은 아호(雅號)다. 경성의전을 중퇴하고, 19세에 <환희>를 동아일보에 연재해 ‘천재 작가’라는 이름을 냈다. 도향은 25세를 일기로 요절했기에 당시 문단의 애도가 집중되기도 했다. 22세 때인 1923년에 <백조> 동인으로 참가했고 감상적 낭만주의 계열의 작품을 발표했다. <백조>가 폐간된 뒤로는 사실주의적 작품을 여러 편 썼다. 대표작으로는 <물레방아>, <뽕>, <벙어리삼룡이>가 꼽힌다.

▲도향의 대표작은 무엇?

나도향이 작품 활동을 한 기간은 1920년경부터 1926년까지 6~7년에 그친다. 작품 수로는 장편 <환희> 외에 20편 정도의 단편이 있고, <그믐달> 등 수필 몇 편이 있다. 이처럼 썩 많다 할 수 없는 작품 가운데, 특히 소설 가운데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몇 편이나 될까? 아마도 많은 사람이 <물레방아>(1925), <벙어리삼룡이>(1926), <뽕>(1925) 세 작품 말고는 떠올리기 힘들 것이다. 이것은 다음 두 가지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곧 첫째는 많은 평론가들이 이 세 작품을 그의 대표작으로 친다는 점이요(두 개를 꼽으라면 <물레방아>와 <벙어리삼룡이>다), 둘째는 대표작으로 인정된 작품을 통해서만 도향의 작품세계를 단정하는 잘못을 저지를 위험성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작품들이 흔히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문학평론가 김재홍은 이렇게 요약한다. “현실 문제를 다룸으로써 긴장을 잃지 않으면서도 본능 문제를 다룸으로써 생생한 생명력을 확보하고 이것들을 상징을 통해서 미학적인 형상의 아름다움을 성취했기 때문이다”(김재홍, 1993).

어려운 말이지만 한마디로 “예술성(작품성)이 높다”는 얘기로 들린다. 김재홍은 이렇게 덧붙인다.

“<벙어리삼룡이>에서는 ‘벙어리’가 시대상을 암유하면서 ‘불’이라는 분노 혹은 울분의 상징성을 획득함으로써 예술적 형상성을 성취한다. <물레방아>에서도 ‘물레방아’가 농촌의 현실에 밀착해서 인생의 덧없음과 함께 성적 에로티시즘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준다. <뽕>의 경우에도 ‘뽕’이 먹이(밥)의 대명사로서 ‘님도 보고 뽕도 딴다’는 식의 상징적 포괄성을 획득하고 있다”(같은 책).

이 글을 쓰기 전에 세 작품을 다시 읽어보았다. 역시 좋은 작품이다. 특히 도향 자신의 문학적 성장과정을 살필 때, 초기 작품들이 수식의 과잉이나 감정편향성, 영탄적인 문체 등의 약점을 가진 데 비하면 기교나 작가의식 면에서 크게 발전한 것이 분명하다. 한 가지 더. 물론 도향은 짧은 소설 창작 기간을 가졌다. 하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이 죽음 직전까지도 식지 않았고 위 작품들은 그의 최후 1~2년에 창작된 ‘후기’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의 성숙기를 대변한다. 따라서 이 작품들은 도향의 대표작으로 불릴 만한 자격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된다.

더구나 대중적 인기도 대단하다. 특히 <벙어리삼룡이>는 작품이 발표된 지 2~3년만인 1929년 나운규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물레방아>와 <뽕>도 감독을 바꿔가며 여러 번 영화로 선보였다.


△나도향. 그림 강현화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1980년대 이두용 감독이 만들고 이미숙 등이 연기한 영화 <뽕>에 대해서다. 원작을 심각하게 개작한 이유가 아리송하다. 원작의 줄거리는 이렇다. 아편장이며 노름꾼인 김삼보는 집안은 돌보지 않고 떠돌아다니며 인생을 탕진한다. 그의 아내인 안협집은 남편의 무능과 무관심 속에서 몰래 몸을 팔아 생활을 하면서 남편의 노잣돈과 노름 밑천까지 제공한다. 자신이 기르는 누에를 먹이려고 뽕을 훔치러 갔다가 뽕밭 주인에게 붙잡히지만 정조를 제공하여 풀려난다. 머슴 삼돌이도 안협집의 약점을 이용해 탐욕을 채우려 한다. 김삼보의 귀에도 이러저러한 소문이 들려 김삼보는 안협집을 닦달하여 실신시킨다. 그러나 안협집은 끝내 다시 일어나 공청 사랑에서 자면서, ‘목숨 다음으로 소중한 돈’을 모으고 억척스럽게 살아간다. 이 작품은 지난번에 소개한 김동인의 <감자>와 닮은꼴인 작품이다. 현실과 인물의 타락상, 추악상 등을 생생하게 드러낸다는 의미에서 자연주의적인 인생관, 작품관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영화의 말미에서 김삼보를 ‘노름꾼으로 위장한 독립운동가’로 처리하는 것은 어쩐 일인가! <아리랑>을 제작한 이두용 감독의 애국주의가 반영된 것일까? 원작의 구조를 지탱하는 중요한 인물을 그런 식으로 개작한 점은 아쉽다.

▲ ‘낭만주의자’라는 레테르

다시 작품으로 돌아가자. 앞에서 ‘대표작’ 지정이 도향의 작품세계를 편향되게 바라보게 할 위험성을 가진다고 했다. 작가론 내지 작품론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특정 시기의 평단 분위기에 무비판적으로 휩쓸려서도 안 되고, 독자로서는 작품을 직접 읽고 스스로 판단하는 주체적인 태도를 버려서도 안 된다. 도향이 바로 그 사례가 된다.

도향에게는 흔히 ‘낭만주의자’라는 레테르가 붙는다. 도향에 대한 초기의 언급은 1920년대 박종화, 염상섭, 현진건, 김기진 등 동료작가들의 월평 및 단평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들은 대개 한결같이 도향의 문학적 성향을 ‘로만틱크’하며 ‘센티멘탈’한 정조를 지녔다고 규정했다.

문학평론가 김윤식과 정호웅은 도향에 대해 “낭만주의에 빠졌던 특출한 작가였다. 기생과의 사랑, 다시 말해 현실에서 발을 떼어버린 낭만주의자의 상식을 흡사 현실 그 자체인 듯 생활 현실로 받아들인 낭만주의자가 바로 나도향이었다”고 했다(김윤식·정호웅, 2000). 또한 “폐결핵과 그로 인한 죽음이 우리 문학사에서 문단적 사건으로 도입된 것은 나도향에서부터다”라면서 나도향의 문학사적 의의를 ‘낭만주의적 포즈’로 파악했다(같은 책).

그런데 이런 평가는 도향의 초기작들, 특히 유미주의 성향의 <백조> 동인으로 활동하던 시기의 작품들을 근거로 하는 것이다. 특히 초기작 <젊은이의 시절>(1922), 동아일보에 연재한 장편 <환희>(1922~1923) 등을 주요 근거로 삼고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물론 김윤식도 <백조>의 분열과 해체 이후 도향 역시 자기 변신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나도향 또한 감상주의적이고 낭만주의적인 자리에서 벗어나 <전차 차장의 일기 몇 절>(1924), <벙어리삼룡이>, <뽕> 같은 사회계층의 문제 곧 계급적 생활인의 문제로 나아갔다. ……남녀간 애정문제에 구심점이 놓인 것이지만 초기의 허황된 내용보다는 좀더 현실적이다”(같은 책)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도향의 중기 이후 작품을 살펴보면 ‘남녀간 애정문제에 구심점이 놓인’ 작품들이 아닌 동시에, 좀더 본격적으로 사회계층의 문제 곧 계급적 생활인의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정작 따로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행랑자식>과 <자기를 찾기 전>은 북한의 문학사에서 ‘비판적 사실주의’ 작품으로 즐겨 다룬 작품이다(유남옥, 1990). 북한의 비평이라고 해서 지레 편견을 가질 일은 아니다. ‘북한’에 방점을 찍을 것이 아니라, 우리 문단 바깥의 시각도 있다는 점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더욱이 나도향, 김동인, 염상섭 등 민족주의 계열의 문학파는 그들의 당대에 신경향파 내지 프로문학에 반대되는 자리에 섰던 사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분단 이전 우리 문단은 적어도 반쪽짜리는 아니었던 셈이다.

▲도향의 잊혀진 작품들

도향이 과도한 감상을 버리고 당시 현실에 천착한 작품으로 북한문학사는 특히 다음의 두 작품을 들었다. 그 평가의 내용은 이 논문을 읽기 전 필자의 작품감상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두 작품을 보자(인용부분은 유남옥의 논문에서 가져옴).


△초기 프로문학 작품과 자연주의 계열 작품이 발표된 <개벽>. 도향은 자신의 작품 중 사회성 짙은 것들을 여기에 보냈다.

<행랑자식>은 <개벽> 40호(1923년 10월)에 발표된 작품이다. 박교장의 행랑채에 사는 진태라는 소년은 눈을 치우다가 교장의 버선을 더럽힌 것 때문에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듣는다. 또 삼태기를 잃어버렸다 해서 (인력거를 끌어 어렵사리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아버지한테 실컷 매를 맞게 된다. 그날 저녁 진태는 어머니의 은비녀를 전당포에 잡히고 쌀을 사오다가 아버지와 부딪치는 바람에 그만 쌀을 엎지른다. 그래서 또 어머니한테 매를 맞게 된다. 하루에 몇 차례나 매를 맞은 진태는 울다가 잠이 드는데 꿈속에서도 억울한 일을 당한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가난한 행랑소년의 심리상태를 잘 포착한 작품이다.

“나는 쌀 느어두는 항아리를 듸려다 보앗다. 듸려다 보닛가 겨 무든 쌀박아지가 식껌은 항아리가 쾅 부인데 들어잇슬 뿐이다. 진태는 힘업시 뚝껑을 덥고서 섭섭한 마음으로 방안을 왓다갓다 하엿다.”

“내일 숙제는 고만두고 내일 학교에 가면 반듯이 여러 동무들이 흉들을 볼 터이요 또는 놀녀대임을 당할 것이다. ……전당표와 돈을 바더들엇다. 이제는 싸전으로 갈 차례다. 석되나 닷되나 한말쌀을 파는 것은 오히려 자랑꺼리지만은 닷곱은 팔기가 참으로 붓그러웁다. 구차한 것이 죄악이 안이지마는 진태에게는 죄지은 것처럼 붓그러웁다.”

다음으로, <자기를 찾기 전>은 <개벽> 45호(1924년 3월)에 발표된 작품이다. 주인공 수님이는 정미소에서 일급(日給)으로 살아가는 여직공이다. 그러던 중 정미소 직공 감독의 유혹에 넘어가 그의 아이 모세를 낳게 된다. 감독은 부채를 지고 도망가고 수님이 혼자서 모세를 기르며 희망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모세는 장질부사에 걸리고 만다. 하느님에게 모세가 회복되기를, 달아나버린 모세 아버지가 돌아와서 자기를 사랑해주기를 기도하면서 수님이는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나 불행히도 모세는 죽고, 기다리던 모세 아버지도 협잡꾼이 되어 돌아오지만 끝내 배신하고 도망가고 만다. 이 절망의 순간에 수님은 새롭게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에서 강렬한 인상으로 나를 사로잡은 대목은 특히 여기다.

“돈이 잇서야 또 약을 지어오지. 오늘 번 돈이라고는 어적게 보다도 쌀이 낫버서 엇더케 뉘와 돌이 만흔지 사십전 밧게 못 버럿는데 이것으로 약을 또 지여오면 내일 아츰 쌀 못팔텐데.”

“어린애는 또 울기 시작하엿다. 어린애 우름소리는 우중충한 방안에 흐리터븐한 공기를 날카롭게 울니면서 자기의 참담한 현상을 정해논 곳 업시 부르지저 호소하는 듯하엿다. 털부털부 하는 문구녕, 거미줄 걸닌 천정, 신문지로 발는 담벼락, 못이 다 빠지고 장식이 물너난 다 깨여진 석유괴짝으로 만든 롱장까지. 어린애의 우름소리가 시칠 적마다 더러운 개천물에 일어나고 살어지는 물결처럼 모든 간난과 불행과 질병과 탄식이 한꺼번에 춤을 추고 일제히 그 적은 방 가운대에서 움즉어리는 것 갓하엿다. 평화와 행복의 녀신은 눈물을 흘니고 그 자리를 떠난지가 오래고 줄기차게 오랜 생명을 가진 마신(魔神)이 이 집 문과 장과 구석과 모퉁이에 스고 안고 드러눕고 기대인 것 갓하얏다.”

퇴폐·비애·동경 등을 짙게 내포하는 낭만주의적 색채는 여기에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비록 비참한 현실의 원인을 묘파하는 세계관이나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가지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불행한 생애와 운명을 따뜻하며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는가. 바로 그렇게 ‘도향’의 작품들은 지금도 은은한 ‘벼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도향 단편소설 <벙어리삼룡이>가 실린 <여명> 창간호

[참고문헌]
나도향(김재홍), 벽호, 1993.
한국소설사(김윤식·정호웅), 문학동네, 2000.
나도향 연구(유남옥), 숙대대학원 석사논문, 1986.
북한에서의 나도향 논의에 관한 몇 고찰(유남옥), 숙대대학원 총학생회 ‘원우론총’, 1990.

[글쓴이 문수현은]
전북대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현재 전북교육신문 기자.
[그린이 강현화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지금은 시골살이를 하고 있다.
[이 연재물은]
격주에 한 번 실리며, 광주드림에 동시 게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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